GREETING
신일고
서울대 법대
제41회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제31기
청와대(민정수석실 행정관)
국무총리실(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 총괄국장)
법무부(검찰국 형사기획과 수석검사)
대검찰청(공정거래TF)
서울중앙지검(공정거래조세부·형사1·8부 수석검사, 조사1부 부부장검사)
광주지검(공안부 차석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특별수사·조세)
의정부지검(공안·조세 수사)
수원지검 평택지청 형사1부장검사(특별수사)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법무부장관 표창(검찰업무 유공)
대검찰청 선정 우수형사부 우수 검사
전 신임검사 면접위원
현 법무부 정책연구심의위원
채널A 돌직구쇼 '강력반'
KBS 생방송 심야토론(성범죄)
KBS · MBC · SBS 등 집중 보도(수능 타종 사고 소송)
조선일보 '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파이낸셜뉴스 '김우석 변호사의 검사외전'
한국경제신문
서울신문 기고
성범죄로 고소당해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의뢰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1심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습니다. 1심 변호인과 의뢰인이 고소인에 의해 조작된 증거라며 강하게 공격했던 메모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메모의 전후 사정과 타임라인을 꼼꼼히 맞춰봤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메모는 조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였습니다.
의뢰인은 당황했습니다. 1심에서 줄곧 조작된 증거라고 주장해왔는데, 그 주장을 철회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의뢰인과 장시간 회의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설득했습니다. "이 메모가 당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의뢰인은 저를 믿었습니다. 그 메모는 2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핵심 증거가 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의뢰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숙한 변호인이 놓친 것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24년 현장이 만든 실력입니다.
6번째 음주운전, 10년 내 3번째 음주 교통사고, 집행유예 기간 중 음주무면허 운전. 마약을 밀수한 유학생, 여직원을 성추행한 공무원과 회사 대표. 통상의 실무에 비추어, 모두 실형이 예상되는 사건들입니다. 의뢰인들은 모두 포기 상태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있는", '나만의 선처 사유'가 있는지 심도 있게 검토했습니다. 나만의 선처 사유가 있어야 선처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위 사건들을 벌금·기소유예·집행유예로 종결했습니다. 한편, 100억 원대 배임 사건과 흉기 폭행 사건을 불입건으로 막아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선처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처받을 사유가 있음에도 주장과 입증을 제대로 못해 선처를 못 받는 억울함, 그것만큼은 막겠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형사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15억 배임 피해를 입은 의뢰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추행당한 의뢰인, 골프치다가 추행당한 의뢰인. 이분들은 너무도 억울하고 고통스럽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죄로 역공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저는 고소 대리를 맡아 가해자들을 엄벌받게 했고, 합당한 피해 보상도 받아냈습니다.
반대로, 경찰이 유죄라며 검찰에 송치한 음주운전·강간·강제추행·사기 사건, 검사가 유죄라며 기소한 허위공문서작성·강제추행 사건은 무혐의·무죄로 막아냈습니다.
검사 시절,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뻔뻔한 가해자를 엄벌했던 경험이 지금도 큰 몫을 합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억울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제가 전주지검 정읍지청장으로 재직 중이던 때였습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청 수사를 지휘할 수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는 법률상 명백한 권한이자 의무입니다. 저는 법률에 배치되는 발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검찰 내부망에 검찰청법 조문을 근거로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 날 전국 언론이 이 글을 보도했고, 뉴스 1면을 장식했습니다. 20명이 넘는 현직 검사들이 동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일이 제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습니다. 검찰은 저를 키워주었고, 중용해줬습니다. 그 조직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키워준 조직을 위해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저의 방식입니다.
제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수석검사 시절에, 3년 9개월간 방치되어 있던 진정 사건을 재배당받았습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전임 검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2달간 집중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진정인들을 기소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00억 원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던 진정인이 피해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저를 그분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검사님, 그때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진짜 죽으려고까지 했었는데, 검사님이 살려주셨어요."
이때부터 명절마다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나눕니다. 저는 검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평생 기억해주고 있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맡은 사건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하는 것. 그것이 저의 방식입니다.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부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가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의무복무하는 병사들이 아무 이유 없이 당해야 했던 그 고통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3일간 직접 조사에 나섰고, 구타·가혹행위 100건이 넘는 사례를 적발해냈습니다. 해당 악습은 즉각 시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대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한 병사가 다가와 차렷 자세로 경례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그 짧은 한 마디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없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법률가로서 추구하는 일입니다.
검사 시절, 국무총리실에 파견 나갔을 때,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공공기관 갑질 근절대책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공직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성범죄·성추행·강요·직권남용·뇌물을 갑질로 규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신고자 비밀 보장 및 보호, 가해자 엄벌을 대책의 핵심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대책은 지금도 모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책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균형이었습니다.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공직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억울한 피해자가 숨을 죽이고 고통받는 일은 없도록. 그 균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지금, 제가 만들어놓은 대책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법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 시절, A 재벌기업을 수사하게 되었습니다. 계열사 한 곳을 압수수색하면 무언가 큰 비리가 나올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단서가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상장 회사라는 점에 주목해 공개된 공시 정보를 직접 분석했습니다. 하루 만에 주요한 배임 혐의를 발견했고, 그 계열사를 압수수색한 끝에 재벌 회장을 구속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에는 B 재벌기업 총수의 비리를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 총수를 진정해 구속되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C 재벌기업 총수가 자신의 잘못을 부하직원에게 전가하려는 상황에서, 부하직원을 변호하고 무혐의를 입증하여 불입건되도록 했습니다.
한편, 검사 시절에 1심 재판을 맡았던 사건이 무죄가 선고된 적도 있었습니다. 중요 관계자가 위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위증 내용을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위증 혐의를 규명하고 자백을 받아내,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도록 했습니다.
단서가 없을 때,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아는 것.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는 것. 이것이 수사의 정점에서 익힌 감각입니다.
검사 시절에, 꽃뱀녀의 허위 고소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남성의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니, 상해 부위와 피해 진술이 맞지 않았고, 진단서를 뗄 때 의사에게 한 말도 피해 진술과 달랐습니다. 저는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꽃뱀녀를 무고죄로 처벌했습니다.
검사 시절에 소년 범죄도 전담한 적이 있습니다. 남중생이 여중생을 강간했다는 사건에서, 두 사람이 서로 사귀며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가 부모에게 들킨 여중생이 거짓 고소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1년 6개월간 방치된 뺑소니 사건을 배당받았을 때는, 왜 이리 오래 방치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철저히 수사했습니다. 결국 담당 경찰관이 돈을 받고 사건을 암장하려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그 경찰관을 구속했습니다.
진실을 찾아내는 것.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그것이 검사로서 저의 본분이었고, 변호사로서도 변하지 않는 신념입니다.
검사 시절, 많은 후배 검사들이 저를 찾아와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고 결론을 내릴지 상의했습니다. 어떤 날은 밤 12시가 넘도록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며 해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사건을 정리하며 말했습니다. "이런 사건은 통상 이렇게 된다. 이 법리는 이럴 때 쓰는 거다. 누구를 상대로 뭘 조사해봐라. 어떤 기관에서 어떤 자료를 받아봐라. 이런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가르쳐준 후배들이 성장해 검찰의 요직을 맡는 것을 볼 때, 정말로 보람이 있었습니다. 저를 키워준 검찰과 선배들께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후배를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 실력이 확실해야 합니다. 흐릿하게 알아서는 명쾌하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시간들이 저의 실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변호사로서 급박한 사건을 맡으면, 팀원들과 밤늦게까지 회의합니다. 실무 변호사가 밤을 새워 만들어놓은 서면을 새벽에 다시 받아 검토하고 수정합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 나와 일하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구속영장이 신청·청구된 의뢰인이 찾아왔을 때는 정말로 급박하게 움직입니다. 구속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팀원들과 총력을 다해 대응한 끝에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그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될 때. 그 순간의 보람과 자부심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형사사건은 전쟁입니다. 의뢰인의 인생 위기를 막는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전장에서 허투루 일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김우석 변호사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공직을 마친 후, 대형 로펌들의 영입 제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만의 법률 서비스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형 로펌의 간판급 변호사는 정말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들은 외국계 대기업과 국내 대기업 사건에 집중 투입됩니다. 1년 내내 법률 이슈가 끊이지 않는 단골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수천억 원 매출의 기업도, 고액 자산가도 대형 로펌에서는 뜨내기 고객에 불과합니다. 간판급 변호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인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사사건은 반드시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가고, 전과자가 되고, 취직을 못하고, 외국 비자를 못 받고, 신상이 공개됩니다. 하나만 실수해도 나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도, 자산가도, 수천억 매출 기업도 모두 대형 로펌 간판급 변호사의 프리미엄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김우석 변호사는 바로 그 간판급 변호사입니다.
현재 저는 서울법대 동기·선배들과 함께 법무법인 명진을 이끌고 있습니다. 금융 전문 로펌으로 출발한 명진에 제가 합류해 형사팀을 신설했고, 지금은 종합 로펌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형사사건은 인생의 위기입니다. 전과자가 되고, 감옥에 가고, 재산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 위기 앞에서, 저는 24년 법조 경력의 실력과 성의를 다해 당신의 편에서 싸우겠습니다.